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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강연주

불법취업해 돈 벌거나, 그냥 나가거나···임금체불 당해도 계속되는 이주노동자의 ‘이중고통’

2023-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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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취업해 돈 벌거나, 그냥 나가거나···임금체불 당해도 계속되는 이주노동자의 ‘이중고통’

강연주 기자    이혜리 기자
노동자의날을 하루 앞둔 지난달 30일 서울 용산역 광장에서 열린 ‘2023 세계노동절_강제노동철폐! 이주노동자 메이데이’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사업장 이동의 자유와 기숙사 보장 등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성동훈 기자

노동자의날을 하루 앞둔 지난달 30일 서울 용산역 광장에서 열린 ‘2023 세계노동절_강제노동철폐! 이주노동자 메이데이’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사업장 이동의 자유와 기숙사 보장 등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성동훈 기자

캄보디아에서 일거리를 찾아 2015년 6월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 A씨는 사업주로부터 3년8개월간 임금 3400만원을 떼였다. A씨는 사업주를 고용노동청에 신고했다.

문제는 A씨의 비자였다. 통상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들어와 취업하는 이주노동자에게 법무부가 부여하는 E9 비자로는 최장 4년10개월까지만 체류할 수 있다. 2020년 5월 E9 비자 기간이 만료된 A씨에게 출입국당국은 G1-11 비자를 부여했다. G1-11 비자는 성폭력 피해자 등 심각한 범죄 피해 때문에 민·형사상 권리구제가 필요한 사람에게 적용되는 비자로 취업도 할 수 있다. 그런데 2020년 10월 출입국당국은 A씨의 비자를 G1-3 비자로 바꿨다. G1-3 비자는 소송 중인 사람에게 부여되는데 이 비자로는 취업이 제한된다.

사업주에 대해 제기한 법적 절차가 끝나지 않았고, 생활을 유지하려면 일을 해 돈을 벌어야 했던 A씨는 출입국당국에 취업을 허가해달라고 호소해 두 달 만에 취업허가를 받았다. A씨가 신고했던 사업주는 법원에서 2020년 6월 임금체불로, 2021년 1월 A씨의 임금체불 신고에 분노해 폭력을 행사한 혐의로 벌금형 판결을 받았다.

이주노동자를 지원하는 활동가·법률가들은 A씨의 사례가 ‘그나마 잘 풀린 경우’라고 말한다. 이주노동자들 중에는 임금체불, 산업재해 사고를 당한 피해자라 해도 비자 문제 때문에 법적 조치를 포기하고 한국을 떠나거나, 어쩔 수 없이 불법 취업해 생계를 유지하며 근근이 버티는 사례가 많다고 했다.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인 김달성 목사는 22일 “재판에서 사업주와 제대로 싸우려면 체류를 해야하는데 취업불가 비자가 나오는 경우가 많다”며 “돈을 쌓아놓고 재판을 하든지, 불법 취업을 하면서 재판을 하든지, 아니면 많은 경우 그냥 포기하고 나간다”고 했다.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경향신문 자료사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경향신문 자료사진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들어온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 B씨는 일을 하다 질병에 걸려 지난해 산재 신청을 했다. 신청 이후 1년이 넘게 흘렀지만 아직까지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B씨는 산재 승인으로 충분한 치료비를 받지 못할 경우 사업주를 상대로 민사소송도 낼 생각이다. 하지만 그가 가진 E9 비자는 내년 만료된다. G1 비자로 전환되면 취업을 할 수 없어 B씨는 벌써부터 걱정을 하고있다. B씨는 통화에서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우리는 무엇을 먹고 사느냐. 돈을 벌어야 먹고살 것 아니냐. 산재 치료비도 많은데, 빌린 돈도 갚아야 해 돈을 벌어야 한다”고 했다.

필리핀 출신의 이주노동자 C씨는 퇴직금, 국민연금을 체불한 사업주와 싸우다 모든 걸 포기하고 내년 초 출국하기로 마음먹었다. E9 비자가 만료됐기 때문이다. 법원은 사업주가 C씨에게 740만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지만 사업주는 현재까지 돈을 주지 않고 있다.

이일 변호사는 “출입국은 민·형사 소송이 진행되는 이주노동자에게 ‘변호인에게 사건을 맡기고 본국으로 돌아가라’며 비자 연장을 제한하는 경우가 있다”며 “정부는 피해자들의 권리구제를 위해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독립된 생계 유지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취업 활동을 허가해줘야 한다”고 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제도 개선을 위한 연구용역에 착수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피해 이주노동자들에게 재량적으로 일부 업종에 한해 일을 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등 구제 대책을 모색하고자 연구 용역을 실시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