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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이혜리

코로나 인력난인데…일하고 싶은 이주노동자는 강제 출국 위기

2022-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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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인력난인데…일하고 싶은 이주노동자는 강제 출국 위기

 
이혜리 기자 [email protected]
 
2022.04.14. 06:00

지난해 12월19일 서울 보신각 앞에서 열린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 기념대회에서 참가자들이 ‘불평등 세상을 바꾸자’라고 적힌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는 모습. 김창길 기자© 경향신문 지난해 12월19일 서울 보신각 앞에서 열린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 기념대회에서 참가자들이 ‘불평등 세상을 바꾸자’라고 적힌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는 모습. 김창길 기자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이주노동자의 한국 입국이 제한되면서 농·어촌에선 인력난을 호소하지만, 한국에서 계속 일하고 싶은데도 강제 출국될 위기에 처한 이주노동자가 있다.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들어와 오랫동안 일을 했는데도 사업주가 고용허가 기간을 제때 연장 신청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13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네팔 국적의 30대 이주노동자 A씨는 최근 국민권익위원회에 이같은 내용의 진정을 제기했다.

A씨는 2017년 4월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들어와 전남의 한 돼지사육 농가에서 일했다. 고용허가제란 인력 수급을 위해 정부 허가를 통해 이주노동자를 국내에 들여오는 제도다. A씨의 가능한 취업활동 기간은 내년 2월까지였다. 법상 기본 3년에 1년10개월 연장이 가능하고, 정부가 코로나19 인력난 때문에 직권으로 1년을 연장했다. A씨는 사업주와 기존 근로계약이 만료될 것을 대비해 지난 1월 초 갱신한다는 내용의 새 계약에 서명했다.

외국인고용법과 시행령은 근로계약을 갱신한 사용자는 고용센터에서 고용허가 기간 연장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한다. A씨를 지원하는 의정부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에 따르면 A씨는 여러 차례 사업주에게 고용허가 기간 연장과 근로계약 갱신 신청을 요청했고, 사업주도 자신이 신고하겠다고 밝혔다고 한다. 그런데 사업주가 제때 신청을 하지 않았다. 사업주는 3월 말 고용노동부 산하 광주고용센터에 방문했을 때에서야 고용허가 기간 연장 신청을 안 한 게 잘못된 것을 인지했다.

뒤늦게나마 A씨 쪽에서 고용허가 기간 연장을 할 수 없는지 물었지만 광주고용센터는 이때는 구제가 어렵다고 답변했다. 외국인고용법은 근로계약이 종료된 이주노동자가 1개월 이내에 다른 사업장으로의 변경을 신청하지 않으면 출국해야 한다(구직등록)는 규정도 두고 있는데, 이 규정에 따르면 A씨는 근로계약 종료 1개월이 지나 출국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계속 일한다고 생각했던 A씨는 졸지에 미등록 체류자 신분이 됐다. A씨는 “한 번도 사업장 변경 없이 일해왔고 계속 일할 의사가 있어서 사업주에게 여러차례 확인 후 근로계약까지 체결했으나 사업주가 신고를 하지 않았다”며 “고용센터가 제 상황을 고려해 구제를 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9년 A씨와 비슷하게 사업장 변경 기간을 넘겨 고용센터가 고용허가서 발급을 해주지 않고 미등록 체류자가 된 이주노동자 사건에서 인권 침해 소지가 있으므로 적극 구제해야 한다고 결정한 적이 있다. 이주노동자에게 고의나 중과실이 없다면 고용허가를 해야한다는 게 결정 요지다.

결정문을 보면 인권위는 이주노동자에게도 헌법상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직업의 자유권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해당 이주노동자가 적법하게 고용허가제로 입국해 한국에서 일정한 생활관계를 형성·유지하면서 정당한 노동인력으로서 지위를 부여받았다는 점에서다.

또 인권위는 외국인고용법이 구직등록 기간을 명시한 것은 이주노동자가 사업장 변경을 구실로 일하지 않고 국내에서 장기 체류하는 것을 막으려는 취지라면서, 이주노동자에게 노동 의사가 충분한 때는 적용의 예외로 볼 수 있다고 했다. 특히 고용허가제가 한국이 인력 수급을 위해 만든 제도인데 노동 의사가 있는 이주노동자를 베제하는 것은 제도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고 했다. 인권위는 사용자와 고용센터는 이주노동자가 미등록 체류자가 돼 열악한 처우에 놓이는 것을 방지하고 보호해야 할 법적 의무를 진다고 판단했다.

광주고용센터 측은 “사업주가 늦게 인지를 했고, 외국인 근로자 본인도 권리와 관련된 부분을 스스로 확인하지 못한 것 같다”며 “(센터는) 법 규정대로 처리한 것이고, 인권위 결정 등은 살펴보겠다”고 했다. 이주노동자 관련 사건을 담당해온 이현우 변호사는 “체류 기간이 남아있는데도 불구하고 (절차적인) 실수로 미등록 체류가 되고 본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인데, 노동자의 고의나 심각한 과실 때문이 아니라면 행정청의 재량 판단을 통해 충분히 노동자를 구제할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이혜리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