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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최지은

환대의 식탁

2022-03-17

조회수 : 308

환대의 식탁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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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채널을 돌릴 때마다 ‘먹방’이 나온다. 찾아가서 먹고, 배달시켜 먹고, 혼자 먹고, 모여서 먹는다. 꾸준히 사랑받는 아이템 중 하나는 찌개 같은 한식을 사랑하는 백인 남성의 모습이다. 그들은 단지 잘 먹는 것만으로 친근한 이웃으로 인정받고 ‘맛잘알’(맛을 잘 아는 사람)이라는 권위도 얻는다. 그러나 우리 일상과 밀접하게 관련됐으면서도 방송에서 거의 볼 수 없는 이들이 있다. 중동,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온 이주민이다. 난민, 결혼이주여성, 이주노동자 등 다양한 정체성으로 한국에서 살게 된 이들의 수가 빠르게 늘고 있다.

이주민이 한국에서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으면서 새로운 정체성을 지닌 세대가 자란다. 문화는 계속 섞이고 변화하는데 많은 한국인이 ‘다문화’를 배제하고 싶어 한다. 난민 인권을 말하면 “너희 집에 데려가 재우라”며 귀를 막고, 내 식탁에 오른 채소의 저렴한 가격에는 농촌 이주노동자가 비닐하우스에서 숙식하는 현실이 있음을 외면한다.

‘우리나라’에서 ‘우리’의 범주는

왓챠 오리지널 예능 <조인 마이 테이블>은 한국에서 음식 이야기가 어디까지 정치적일 수 있는지 실험하는 듯한 프로그램이다. 방송인 이금희와 소설가 박상영이 매회 다른 지역을 찾아가는 여행 예능이지만, 이들보다 먼저 등장하는 것은 그 지역에 사는 이주민이다. 내전을 겪는 예멘에서 목숨의 위협을 받다가 2018년 한국으로 탈출한 이스마일은 제주에 살며 같은 난민들을 돕는다. 그는 두 사람에게 한국에 사는 모든 예멘인의 집 같은 예멘 식당을 추천한다. 1998년 산업연수생 제도로 한국에 와서 공장에 다니던 멜다는 이제 결혼해 아이를 키우며 경기도 안산의 한 은행에서 일한다. 그가 추천한 곳은 나시고렝이 맛있는 인도네시아 식당이다.

‘우리나라’에서 ‘우리’의 범주를 어떻게 봐야 할까. ‘원주민’ 이금희와 박상영이 이주민에게 초대받아 그들에게 익숙한 식당을 찾아가는 구성은 두 집단 사이에 존재하는 위계를 뒤집으며 사고의 전환을 이끈다. 이금희는 예멘 난민 입국을 강경히 반대하던 여론을 떠올리며 말한다. “낯선 이들과 부딪히지 않는 것이 제일 안전하다고 생각하겠지만, 난 항상 ‘나도 저 사람이 될 수 있다. 저 사람도 내가 될 수 있다’라고 생각해.” 그 말은 제주4·3 항쟁에 관한 대화를 나누던 중 박상영이 전하는 이스마일의 이야기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이렇게 고통의 역사를 가진 곳이 지금 이렇게 평화로운 모습이라는 게 위안이 된다.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우리나라에도 언젠가 그런 평화가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이스마일) 우리와 그들 사이의 경계를 지우는 대화다.

누군가의 삶의 터전인 지역

많은 여행 프로그램이 지역을 소비의 공간으로만 비춰온 것과 달리 <조인 마이 테이블>은 누군가의 삶의 터전으로서 지역을 이야기한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합동분향소를 찾았던 이금희의 회고와 함께 시작된 안산 여행은 반월국가산업단지 노동자들이 이용하는 매점과 3개 국어로 적힌 간판이 즐비한 국제 거리로 이어진다. 멜다가 일하는 은행에 러시아어와 인도네시아어 안내문이 붙어 있듯 이주민은 이미 우리 사회의 일부가 됐고, 이금희의 말대로 “우리 사회 미래의 한 축”이기도 하다. 그러니 <정치적인 식탁>을 쓴 이라영 작가의 말을 기억하자. “먹는 입, 말하는 입, 사랑하는 입의 권리를 생각하는 정치적인 식탁은 누구든 환대해야 한다.” <조인 마이 테이블>이 공들여 차린 식탁에서 우리도 환대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최지은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