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한겨레 이우연

샤워실에 ‘특수거울’ 설치한 사장님…신고 다음날 건물이 불탔다

2022-01-01

조회수 : 178

샤워실에 ‘특수거울’ 설치한 사장님…신고 다음날 건물이 불탔다

입력
 
 수정2021.12.31. 오후 6:03
사업주-이주노동자 성범죄 판결 찾아보니
취약한 상황 탓 성범죄 위협 항상 노출
“사업장 변경 허가 등 근본 대책 있어야”
0002573817_001_20211231180301092.jpg?type=w647
지난 28일 화재로 전소된 경기도 포천의 한 공장. 이 공장 사장 ㄱ씨는 전날인 27일 샤워 중인 여성 이주노동자를 특수거울을 통해 불법 촬영한 혐의로 입건됐다. 포천이주노동자센터 제공

최근 경기도 포천의 한 공장 사장이 직원 샤워실에 밖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특수거울을 설치해 여성 이주노동자를 불법 촬영한 사실이 드러나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신고 14시간 만에 공장이 원인을 알 수 없는 불로 타버리면서 경찰 수사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주노동자단체들은 이번 사건이 특수한 사례가 아니라고 목소리를 낸다. 허가 없이 사업장을 옮길 수도 없고, 그만둘 경우 비자를 잃게 되는 이들의 취약한 상황탓에 여성 이주노동자들이 사업주 등의 성범죄 위협에 항상 노출돼 있다는 것이다.

불법촬영 혐의로 입건된 ‘사장님’ 


31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27일 경기도 포천의 한 플라스틱 사출 공장에서 50대 공장 사장 ㄱ씨가 샤워 중인 외국인 노동자 ㄴ씨를 휴대전화로 불법 촬영한 혐의(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공장 내부 샤워실을 이용하던 ㄴ씨는 거울 너머로 불빛이 느껴져 경찰에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은 샤워장에 안쪽은 거울로 보이고 밖에서는 안을 볼 수 있는 특수거울이 설치된 것을 확인했다. 샤워실 바로 옆 사장실에서 해당 거울을 통해 샤워실을 볼 수 있는 구조였다.

석연치 않은 일은 신고 14시간 만에 일어났다. 28일 새벽 3시41분께 원인을 알 수 없는 불로 샤워실이 설치돼 있던 공장과 옆 숙소 등 샌드위치 패널 구조의 건물 2동이 모두 타버린 것이다. 포천경찰서 관계자는 “1차 감식은 마쳤고 다음주 중 국과수 등과 합동 감식을 진행해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해당 공장에는 ㄴ씨를 비롯해 비전문취업(E-9) 체류자격을 받은 동남아시아 출신 여성노동자 2명이 근무하고 있다. 이외에도 미등록 이주노동자까지 합하면 더 많은 여성 이주노동자들이 피해를 봤을 가능성이 있다. 경찰은 ㄱ씨가 임의제출한 휴대전화에 대한 디지털 포렌식을 진행 중이다.

과거 사건 판결문 살펴보니 117차례 불법촬영한 사업주도…


이주노동자단체들은 이번 사건이 특수한 사례가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성이자 이주노동자라는 이중의 덫이 성폭력에 취약한 환경을 만든다는 것이다. 이주노동자평등연대 등 시민단체는 지난 30일 성명을 내고 “이주노동자들이 사업주에게 일방적으로 종속된 상황, 사업주 허가 없이 사업장을 옮기기 어려운 법제도, 언어와 국적으로 인한 인종차별, 불이익이 있을까 피해에 대한 신고나 표현을 두려워하는 상황 등을 고려하면 실제 일어나는 성폭력은 훨씬 더 많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2016년 조사를 보면, 제조업 분야 여성 이주노동자 중 11.7%가 성폭력을 겪었다고 답했고,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가 같은 해 농업 분야 여성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12.4%가 성폭력을 입었다고 밝혔다.

<한겨레>가 대법원 판결서 인터넷 열람 시스템에서 ‘외국인 근로자’로 최근 2년 치 법원 판결문을 살펴보니, 제조업이나 농어업 분야에서 사업주 혹은 상급자가 여성 이주노동자를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사건은 4건이 있었다.

경기도의 한 공장장은 지난 1월 기숙사에서 고용계약 연장과 관련 이야기를 하던 여성 이주노동자를 강제주행했으나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축사에서 여성 이주노동자를 상대로 성폭력을 저지르려 했던 전남의 한 사업주에게도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이, 공장에서 여성 이주노동자 2명을 추행한 강원도의 한 공장 이사에게도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됐다.

성범죄 신고를 하려다 오히려 성폭력 피해를 본 경우도 있었다. 경기도에서 제조업체를 운영한 ㄷ씨는 지난해 3월 여성화장실에 설치된 소형카메라를 발견한 여성 이주노동자를 회유하다가 강제로 추행했다. 그는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최소 117회에 걸쳐 여성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불법 촬영을 해왔다. 재판부는 ㄷ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하며 “외국인 노동자인 피해자가 취업 및 입국 혜택을 받기 위해 계속 근무해야 하는 궁박한 처지에 있음을 기화로 피해자를 추행했다”고 했다.

“사업장 변경 자유 보장해야”


여성 이주노동자들의 성폭력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사업장 변경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헌법재판소는 최근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 변경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고용허가제에 합헌 결정을 내렸다. 2019년 고용노동부가 개정한 고시에 따라 이주노동자가 사업장 내 성폭행 피해로 근로를 계속할 수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게 되지만 이 경우에도 입증이 까다롭다고 이주노동자 단체들은 주장한다. 포천이주노동자센터 김달성 목사는 “많은 여성 이주노동자들이 절대군주에 가까운 사업주의 비위를 거스르면 고용연장이 어려워지는 등의 불이익이 두려워 성범죄를 당해도 신고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들의 취약한 지위를 보호하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0002573817_002_20211231180301128.jpg?type=w647
지난 28일 화재로 전소된 경기도 포천의 한 공장. 이 공장 사장 ㄱ씨는 전날인 27일 샤워 중인 여성 이주노동자를 특수거울을 통해 불법 촬영한 혐의로 입건됐다. 포천이주노동자센터 제공

기자 프로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