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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서진솔

타국에서 당한 산재의 무게

2021-10-29

조회수 : 34

타국에서 당한 산재의 무게

입력
 
 수정2021.10.27. 오후 6:47
산재와 마주한 가족의 삶 연쇄기고 _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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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씨(왼쪽)와 롬멜씨(가운데)가 지난 5월29일 경기도 포천 소재 한 병원에서 이주민 지원 활동가의 도움을 받아 진료비를 수납하고 있다. 사단법인희망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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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서진솔|사단법인희망씨 활동가

일요일 밤마다 조이씨는 어김없이 집을 나선다. 금요일까지 이어지는 ‘입주 가사노동자’ 업무가 시작된 것이다. 그는 집이 있는 경기도 포천을 떠나 서울 여의도 한 가정에서 평일 내내 머무르며, ‘아이 돌봄 노동자’ 겸 ‘가사노동자’ 겸 ‘영어교사’로 일하고 있다.

근무는 일어나자마자 시작된다. 아침 8시 입주 가정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빨래, 청소 등 집안일을 한다. 하교 시간에 맞춰 아이들을 다시 집으로 데려오고, 영어를 가르친다. ‘사장님’이나 ‘사모님’ 중 한명이 귀가하면 업무는 끝난다. 명시적으로는 오후 6시가 일을 마치는 시간이지만 부모의 귀가 시간이 일정치 않아 밤 9시, 10시까지 자동 연장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이씨와 같은 필리핀 국적의 노동자가 많이 거주하는 포천에도 일할 수 있는 공장이 많지만, 대부분 주 6일 근무이기 때문에 토요일에 쉴 수 있는 일을 선택했다. 체력 소모가 큰 것도 공장을 피한 이유 중 하나다. 플라스틱 공장에서 일하다 뇌경색으로 쓰러진 남편을 돌봐야 하기 때문이다.
조이씨의 남편인 롬멜씨가 쓰러진 건 지난해 1219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부부는 롬멜씨가 근무하는 포천 소재 한 플라스틱 공장의 기숙사에 거주했다. 조이씨가 문에 돌이 날아와 맞는 소리를 듣고 나가보니 눈 위에 남편이 쓰러져 있었다. 사업주와 함께 롬멜씨를 인근 병원으로 데려갔고, ‘뇌경색’ 진단을 받았다.

발병의 주요 원인으로는 과로가 꼽힌다. 롬멜씨는 한 공장에서 약 6년 동안 주 6일, 하루 12시간씩 일했다. 일주일에 70시간 이상 근무한 셈이다. 고용노동부의 뇌심혈관계질병 인정기준 고시를 보면 ‘발병 전 12주 동안 업무시간이 1주 평균 60시간을 초과하는 경우 업무와 질병과의 관련성이 강하다고 평가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산업재해 인정 가능성은 미지수다. 최근 3년간 뇌심혈관질병이 산재로 인정받은 비율은 10건 중 4건 정도다. 롬멜씨를 지원하는 김성호 노무사는 ‘노동시간 입증’이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당시 두 사람이 공장 기숙사에서 지내 교통카드 기록도 없고, 출퇴근을 증언할 이웃도 없다. 공장에는 폐회로텔레비전(CCTV)도 없다”며 “노동시간과 관련된 분쟁이 발생하면 증명 책임은 자료를 가진 사용자가 아니라 자료가 없는 노동자에게 전가된다. 적어도 타인의 시간을 활용하는 자에게 그 시간을 기록하고 보존해야 할 의무 정도는 부과해야 한다”고 밝혔다.

조이씨가 남편의 사고로 마주한 가장 큰 문제는 경제적인 어려움이다. 남편을 돌보다가 지난 4월이 돼서야 다시 일을 할 수 있었고, 4개월의 소득 공백은 그대로 부담으로 돌아왔다. 지난 2월부터 남편의 치료를 중단하기까지 했다. 치료비와 약값만 한달에 50만원이 넘는다. 사쪽과의 분쟁 끝에 퇴직금을 지급받았고, 5월이 돼서야 치료를 재개할 수 있었다. 조이씨는 “산재 승인까지 걸리는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 가장 힘들다”며 “치료비와 약값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필리핀에 있는 자녀들에게 보내왔던 생활비도 끊을 수밖에 없었다. 2014년 한국에 입국해 매달 100만원가량 송금했지만, 남편 사고로 이마저도 어려워졌다. 조이씨는 “필리핀 친구들이 집에 찾아와서 5만원, 2만원씩 주면 자녀들에게 보낸다”며, “주택담보 빚을 갚거나 아이들 등록금을 내야 하는데 못 하고 있어서 답답하고 걱정된다”고 전했다.

‘불안정한 체류 상태’에서 오는 불안감은 그를 괴롭힌다. 산재 인정 후 비자 신청을 고민하고 있지만, 산재 보상 기간이 끝나면 근로복지공단에서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불법체류자로 통보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 망설이고 있다. 산재로 치료 중인 미등록 외국인과 그 가족은 기타(G-1)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다. 그러나 입원치료 및 보상 지급이 완료될 때까지만 체류가 가능하다.

조이씨는 일하기 전 종종 심한 두통을 앓는다고 했다. 이에 병원에서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를 받기도 했다. 큰 이상이 발견되진 않았지만, 담당 의사는 스트레스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조이씨는 “(산재 피해) 가족들에 대한 심리적이고 정서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타국에서 한 집안의 가장으로, 산업재해 피해자의 보호자로 오롯이 혼자 짊어지는 부담이 오늘도 그의 어깨를 짓누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