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법원도 인정한 “이주어선원 임금 차별”, 그러나 갈 길이 멀다

2022-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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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도 인정한 이주어선원 임금 차별”,

그러나 갈 길이 멀다

 

한국 어선에서 일하다 사고를 당한 이주어선원에게도 내국인 선원과 동일한 기준으로 재해보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이주어선원 A씨는 배 위에서 작업 중에 오른손이 기계에 빨려 들어가는 큰 사고를 당했다. A씨가 재해보상금을 신청하자 수산업협동조합중앙회(이하 수협’)선원 최저임금 고시상의 외국인 선원 적용 특례에 따라 차등된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재해보상금을 지급하였다. 이에 대해 선원이주노동자 인권네트워크 소속으로 구성된 A씨의 대리인단은 수협의 재해보상금 처분에 대해 취소소송을 제기하고, 이주어선원에게만 차별적인 최저임금을 정한 외국인 선원 적용 특례조항이 유엔 사회권규약 및 헌법, 선원법, 근로기준법을 비롯해 법률유보원칙과 재위임금지원칙을 위반하였음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지난 119, 서울행정법원 행정1단독(김연주 판사)은 수협의 처분이 특례 조항의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서 위법하다고 판단하며 A씨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번 판결은 이주어선원에 대한 임금 차별 문제 자체를 명확하게 지적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다. 재판부는 판결문 말미 약 2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의 설시를 통해, “최저임금이라 함은 일에 대한 정당한 보수의 최저선을 정한 것으로서위임의 한계를 일탈하여 외국인 선원에 대하여만 이 사건 단체협약 등으로 최저임금을 정하도록 한 것을 허용할 수는 없다고 하며, “선원 최저임금 및 재해보상 시 적용되는 통상임금, 승선평균임금 등에 관한 관련 규정 체계에 대한 전반적인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이주어선원은 우리나라 전체 선원 중 45% 가까이의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원양어선은 10명 중 8명이, 연근해어선은 10명 중 4명이 이주어선원이다. 한국의 수산업이 철저하게 이주어선원의 노동에 의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에 대한 임금 차별이 제도적으로 당당히 시행되어 왔다.

 

선원법에 따라 해양수산부 장관이 매년 발표하는 선원 최저임금 고시는 선원의 최저임금과 재해보상금 산정의 기준이 되는 월 고정급의 최저액을 각각 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 고시는 최저임금 부분에서 외국인 선원에 대한 적용 특례를 두어, 당사자가 포함되지 않은 제삼자간의 협의(전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과 수산업협동조합중앙회)로 최저임금을 정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 결과 이주어선원들에게는 내국인 선원보다 훨씬 낮은 수준의 최저임금이 정해졌다. 일례로, A씨가 재해보상금을 받던 시기인 2020년도 선원 최저임금은 월 2,215,960원이었지만, 선주들과 수협 사이의 합의로 정해진 이주어선원의 최저임금은 월 1,723,500원이었다.

 

한편 업무상 재해에 대해 지급하는 재해보상금 역시, 내국인 선원은 위 고시에 따로 규정된 재해보상시 적용되는 통상임금 및 승선평균임금 등 산정을 위한 월 고정급의 최저액의 적용을 받는다. 그 최저액은 일반적인 최저임금과 분리되어 (좀더 높게) 정해져 있다. 2020년도의 경우 그 금액이 월 2,618,940원이었으니, 당시 선원 최저임금보다 약 40만 원가량, 이주어선원 최저임금보다는 약 75만 원가량 많은 금액이다. 선원이 재해보상을 받게 될 경우 그의 원래 임금이 아무리 선원 최저임금 이상이었더라도, 2,618,940원에 미달한다면 2,618,940원을 하한으로 산정하여 재해보상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이 내용에 대해서는 일반 최저임금 부분과 달리 외국인 선원에 대한 적용 특례 조항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협은 이주어선원의 재해보상시 해당 최저액을 적용하지 않고, 여전히 이주어선원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산정하여 차별적인 재해보상금을 지급해왔다. A씨 역시 재해보상시 적용되는 통상임금 및 승선평균임금 등 산정을 위한 월 고정급의 최저액보다 80만 원 가까이 미달하는 이주어선원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재해보상금을 지급받았다.

 

이미 10여 년 전부터 각급 법원에서 이러한 관행이 특례 조항의 범위를 벗어났으므로 위법하다는 판결이 이어져왔다. 하지만 그 외에 이주어선원에 대한 임금 차별 자체의 문제를 언급한 판결은 없었고, 해양수산부와 수협 역시 아무런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이 사실을 감안한다면, 이번 판결이 이주어선원에게 자행되는 임금 차별을 인정하고 제도의 전면적 개편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 의미가 크다.

 

공교롭게도 이 판결이 선고된 같은 날, 해양수산부(장관 문성혁)는 이주어선원의 최저임금을 내국인 선원의 최저임금 수준으로 인상하기로 합의하였다고 밝혔다. 일견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 시기를 2026년까지로 정하여, 십 수 년 간 제도가 뒷받침해 온 이주어선원 임금 차별 폐지를 또 다시 4년 뒤로 미루었다.

 

또한 이주어선원 도입과 관리가 송출입으로 영리를 취하는 민간기업에 맡겨져 있는 현행 이주어선원 관리제도 개선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이주어선원에게 최저임금 인상의 혜택이 돌아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 인상분이 불법적 송출 비용으로 흡수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 선원이주노동자인권네트워크가 입수한 베트남 현지 인력공급업체와 이주어선원 간 계약서에는 기본 급여 상승이 있을 경우 이에 대해 이주어선원이 인력공급업체에 정산해야 한다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 때문에 그동안 이주어선원 최저임금의 인상에 동반해 송출 비용 또한 꾸준히 상승하여 그 금액이 1천만 원에서 2천만 원 이상에 달하는 경우도 확인된다. 이에 대해 해양수산부는 반복적으로 제도 개선을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어떠한 변화도 실행하지 않은 채 송출 비리를 방임해 왔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수협은 그동안 법원의 판단에도 불구하고 반복적으로 자행해 온 위법한 방식을 버리고, 이주어선원에게도 차별 없이 재해보상금 등을 지급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해양수산부는 제삼자 간 협의로 이주어선원 최저임금을 정할 수 있도록 한 선원 최저임금 고시외국인 선원 적용 특례를 폐지하여 국적에 따른 최저임금 차별을 즉시 철폐하여야 한다. 동시에 이주어선원 송출입과정을 민간 영리 기업이 아닌 공공 부문이 직접 담당하도록 이주어선원 제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겠다는 약속을 즉시 실행에 옮겨야 할 것이다. 이미 십 수 년 간 차별을 감내해 온 이주어선원들에게 2026년은 여전히 너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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